미국인 웃겼던 첫 아시안 자니 윤 별세
sdradio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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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9 19:18
미국인을 웃긴 첫 동양인 자니 윤(Johnny Yuneㆍ한국명 윤종승)씨가 84세로 지난 8일 새벽 4시 별세했다.
풍자 위주의 스탠드업 코미디로 미국인들을 사로잡았던 1936년생인 고인은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60년대 초반 유학에 올랐고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했다.
이후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고 1964년부터 자신만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개발, 자극적인 욕설 등 천박한 방법을 쓰지 않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동양인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비하, 성적 풍자, 정치 풍자 등을 간결하게 툭툭 던지고 넘어가는 식으로 미국인들을 웃겼다.
유족들에 따르면 고인은 본래 언어 능력이 특출했다. 중학생 때 벌써 대전에서 열린 영어 웅변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특히 미국에 오기전 미8군에서 일할 때는 미국의 각 지방 사투리를 익혔고, 이것이 나중에 코미디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전한다.
1977년 샌타모니카 코미디클럽에서 당시 최고의 코미디쇼인 ‘투나잇쇼’의 MC 자니 카슨에 픽업됐다. 처음에는 비중이 크지 않았으나, 영화배우 찰턴 헤스턴이 지각하는 바람에 20분간 시간을 끌면서 카슨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한 달에 한 번씩 고정 출연 기회를 얻어, 1980년까지 총 34회에 출연했다. 이후 NBC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자니 윤 스페셜쇼’를 진행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1989년 한국으로 돌아갔다. 귀국 후에는 조영남을 보조MC로 두고 ‘자니윤쇼’를 진행했다. ‘데이비드 레터맨 쇼’ 포맷을 딴 방식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는 딱딱한 대담쇼 형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자니윤쇼’가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시청자들의 갈채를 받았다.
방송계에서 은퇴한 고인은 미국으로 돌아왔다가 2014년 박근혜 정부 때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에 임명됐다. 하지만 2016년 임기 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뇌출혈로 입원했고, 이후 미국에 돌아와 투병 중 별세했다.
친동생인 윤종무씨는 “지난달 퇴원했다가 나흘 전 갑자기 호흡 곤란을 느껴 입원했다가 8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입원 전까지 대화를 나눴다는 동생 윤씨는 “형님은 평소 ‘많은 사랑을 받아서 항상 행복했고, 감사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상처를 입힌 일이 있었다면 사과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다”고 전했다.
LA에서 함께 봉사활동을 했고, 마지막까지 만남을 이어갔던 임태랑씨는 “그는 참 선하게 살았다. 욕먹는 일이 없었다. 항상 양보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갔다”고 안타까워했다.
시신은 평소 고인의 뜻에 따라 UC어바인에 기증됐고, 장례도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진행될 예정이다.
연락처 :(213)268-0469(임태랑)